새봄 수필방을 활짝 열어본다
복수초꽃
설연화
[ 새봄 수필방을 활짝열어본다 ]
비청/한 희옥
그동안 자물통으로 채워뒀던 나의 수필방을 7년만에 열어본다
수필방을 열어볼 용기를 낸것은 같은 문학회 그러니까 부산 청량사 문학회 회장님께서
보내주신 수필집을 읽으면서 나도 수필을 조금씩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이 물결처럼 퍼져오기 시작해서다
2010년 부산 청옥문학에서 수필 등단은 했지만 그동안 수필을 못쓴 이유인즉은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가 수필은 소설이 아니기에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한다
그러기에 주로 내가 겪었던 이야기와 내주변에 일어났던 일에대한 느낌과 자신의견해
그리고 여행이나 나들이에서 또는 삶속에서 보고 느낀점등을 담담하게 적어나가야 하기에 ...
진실에 바탕을 두고 쓰다보면 나의 이야기가 주가 될것이다.
에세이속에 나를 낱낱이 녹아나야 글의 제맛을 느낄수가 있을텐데
슬그머니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나의 삶이 평탄하지 못해서다.
삶의 굴곡이 많았기에 은근히 부끄럽고
글을 읽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것인가부터 염려스러워서다
누구든 삶이 둥굴 둥굴 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굴곡이 심했었고
나의 판단이 옳지 않음이 많았기에 후회만이 점점 늘어날뿐이였기에
옛친구도 가족에게도 나의 안녕을 알리기엔 현실속의 내가 초라하기 그지 없기때문이다
성공한뒤에 써야겠다고 마음을 닫아버렸기에 그시간이 6년이 흘러갔다
더 늦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는데 청량문학 회장님의 보내주신 수필집을 읽으면서
나의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회장님처럼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시는 분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멋져 보였기에
나처럼 안정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수필을 쓸자격이나 있나싶어서 제나이 60이 넘으면 쓸려고
수필방에 자물통을 채웠었다 .
망망대해 돛단배처럼 예측불허의 삶을 사는 사람도 다 삶이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잘 헤쳐나가는 과정과 환경이 다를 뿐 누구나 주인공이다.
우리의 종점은 죽음이만 그 죽음을 미리겁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않는가
과정을 의미있게 보내야 그것들이 모아져 보람으로 다가오는것이 성공으로 이어진다
내가 좋아라 하는 일을 찾다보면 돈이 멀어지고 돈을 쫒다보면 하고싶어지는일은 또 멀어지듯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이 생긴다면 가장 멋진 삶일것 같다.
두번째 이유인즉 초등학교 1학년때 동창을 꽃다운 나이에 아주 먼곳으로 간줄도 모르고
살아갔다는 죄책감과 슬픔이 수필을 못쓰게 만들었었다
저는 빠른 생일이라 7살때 초등학교를 입학했었다
생에 처음으로 내책상도 생겼고 옆자리 짝지도 생겼다
눈이 크고 동그란 이쁜 여친이였다.서로 첫 친구가 된것에 설레였었고 같은 마을이지만 동네 이름은 달랐다
같은 동네 친구들만 만나다 다른동네 친구를 얻었다는 기쁨에 우린 학교파하고 서로의 집으로
손잡고 갔다리 왔다리 하면서 변치않기를 약속했었다.
기억에 남는건 그친구의 집은 우리집과 정반대인 오름과 한라산 방향이였고 우리집은 바닷가쪽이 가차운곳이였다.
그친구 집으로 갈때면 항상 정상적인 길로 가는것보다 중학교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가까웠던 그집만 기억날 뿐이였다
세월은 흘러 난 그친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에서 멀어졌었나보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저는 부산으로 이사를 왔었고 중학교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고등학교도 별무리없이 들어갔다
고2때 고향인 제주도로 방학때 놀러갔다.고모님을 뵈러간것은 아니였지만 어른이신 고모님께 제주도 놀러왔다고
인사드리러 갔을때 마당에 들어서자 *바꺼리 툇마루에 걸쳐 앉아있던 여인이 나를 보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너 희옥이 아니니?
그랬다. 난 그여인이 그것도 배가 만삭인 새댁이 나를 알리가 없을텐데 누구지 누구지? 머리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여인먼저 눈치를 챗는지 또 말을 건낸다
나 너랑 초등학교 1학년때 짝지였어 .... 난 너무 놀라 응 그래 이름이 뭐드라 미영이든가 ..얼버무렸다
그 친구는 나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나를 바로 알아봐주다니 마음속으로 신기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살아온 대화를 풀어나갔지만 고모님 성화에 더 많은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그때만해도 연락할 방법 같은것도 없이 언젠가 고모네댁 올때면 볼수 있겠지...
제대로 인사도 못나눈것이 부산으로 오면서 마음에 걸렸지만 우린 너무 먼거리였고
그동안 연락도 없이 지냈기에 그다지 할말도 없었다
세월이 또 많이 흘러갔다. 언제인가 제주도 고모님이 부산 우리집에 오셨다
고향에 계신분들의 안부를 물었고 바꺼리에 사는 친구의 안부도 물었다
아기는 잘크고 딸인지 아들인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
그런데 그 새댁 애기 낳다가 난산으로 고생하다 산모는 잃고 애기만 건졌다고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그때 그 얘기 들을땐 아가씨였기에 믿어지지가 않았고 내귀를 의심했었다
너무 놀래서 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울었다. 차라리 고향에서 만나지 않았었다면 내가 몰랐을것을
이 이야기를 수필로 쓰고나서 글을 삭제하고부터 수필을 쓰지못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수필로 쓰고나서 가끔 컴을 열어 읽을때마다 내가슴이 찢기는것 같아서였다
*제주도 방언*
*안채-안꺼리
*바같채-바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