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비청 스토리/비청 수필(essay)

나는 잊혀진 친구가 아니였다

비 청 2020. 9. 4. 21:07

 

                                                                글  비청/한 희옥

 

우린 살아가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국민학교 짝지 중에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반대로 내가 기억하는 짝지가 있었나?

실제로 나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가슴팍이 아려온다

갈래 머리 여고 3학년 때이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부산으로 이사 온 후

방학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고향인 제주도를 가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이사 오자 마자 난 사춘기를 맞아 향수병에 걸려 고향 그리운 글만 쓰면서

언제쯤 고향엘 가볼까나 손꼽아 여름 방학만을 기다렸다

울 어멍 허락을 받아 고향 김녕에 갔을 때였다

 

여고시절 서귀포에서 전학 온 친구와 미술반에서 만난 우린 금방 친해졌고 

서귀포 친구와 여름방학에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제주도에서 만나 신나게 서귀포 구경도 잘 허고 그 친구 집이 식당을 했기에

식사 대접도 잘 받고 좋은 자가용도 그때 처음 타봤다

내일은 김녕 고모님 댁에서 하룻밤 좀장 부산으로 가야 했기에

내가 태어나 살던 쇠 동산 빌레 쪽 아래가 우리 집 자리였고

그 집 자린 흔적만 남아 있었고 초가집은 온 데 간데없었다

고모댁은 우리 집 뒤쪽 쇠 동산 이란 곳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어릴 땐 고모댁이 오르막이 심했다고 여겼지만 조금 컸다고 멀지도 않거니와 높지도 않았다

활짝 열린 대문을 들어서자 변한 건 초가지붕이 강철지붕으로 바뀌었고 밖 같아 있던

통시도 흔적만 있을 뿐 도새기는 보이지 않았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는 고모님과 고모부가 기거하고 계셨고 밖 거린 세를 줬는지 툇마루에

젊은 여인이 만삭의 몸으로 여름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 여인과 먼저 눈이 마주치자 난 고개만 까딱하고는 "고모님...! 하고 불렀을 때

임신한 그 여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너 혹시... 희옥이 아니니? 하는 거였다

"저를 아세요?"너 나영 국민학교 1학년 짝지였잔아..."나의 머릿속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자세히 살폈다 눈 코 입을 자세히 보니 기억이 살아났다

그런데 이름은 떠오르질 않아 무안해졌다

그 친구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나의 몸도 어느새 툇마루에 걸터앉아 서로 바라만 볼뿐 변해버린 모습에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1학년 급우들은 거의 나보다 한 살 위였다 빠른 생일이다 보니 7살에 입학했었나 보다

우리 집 막둥이 동생이 나보다 5살 아래다 보니 큰 년인 내가 동생 육아를 해야만 했었다

어멍은 바당 일과 밭일에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야 했기에...

동생 육아로 학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출석일수가 모자랄 수밖에

지금 생각하니 동생도 동행해서 학교에 많이 갔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내조끄테에 동생 의자까지 호나 장만해 주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는 그 친구 집은 외딴곳이었다

아마도 내가 첫 친구일 수 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짝지가 되고 며칠 뒤 그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손을 이끌었다

친구가 나를 데리고 집에 가고 싶었나 보다

우리 둘은 손잡고 올레길 몇 개를 돌고 돌아갔었지

그 친구 집은 우리 집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바다가 가까운 곳이었고 친구 집은 오름이 가까운 곳이었다

봄이면 가끔 고사리 꺾으러 갈 때 지나치던 곳에 외딴집 한 채가 있을 뿐 주변은

온통 밭이거나 들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짝지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첫 친구로 인정해주었고

자기 집에 친구가 오는 걸 바랬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 해지기까지...

 

고모댁에서 하룻밤 좀장 뒷날 부산 집으로 올라왔고 세월이 흘러 또다시

고향 방문하면 그 친구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시간을 흘러 성인이 된 나의 생활은 휴가 때면 고향 방문할 계획이었다

어느 날 고모님이 부산에 오셨다.  고모님께 바 거리 친구 안부를 물었다

"그 새각시 아기 낳다 죽었쪄..."

"똘 낳아서 지금 막커실걸..."

고모님은 무심하게 말씀 하셨지만 나의 가슴은 철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님 가시고 나서 방구석에서 훌쩍거렸고 한동안 멍하니 충격에 휩싸여

내가 무슨 죄를 지은 양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친구를 그렇게 보내다니 스스로 자책하며 그때 왜 내가 그 친구 이름도 기억도 못하고

맹추같이... 생에 첫 학교 짝지를...

친구 집은 오름이 가까운 곳이라 밤이면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에

그 친구에게 미안함이 앞서 왔다

그 시절엔 그 친구가 외로웠겠구나 이런 생각을 못했을 때라 지금의 나의 생활이 외롭다 보니

그 친구가 더 그리워 그 친구를 위해 시도 짓고 미안함을 편지글 대신

이글로 너를 기억할 테니 멀리 있어도 잊어버리지 않을게,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

미안하다 친구야...

 

 

꽃잎이 된 친구야

 

 

나 너를 잊지 않으마

먼길 돌아 다시 만났건만

못 알아봐 미안해

 

우리의 인연은

입학식 날 입으려고

아껴뒀다 꺼내 입은

치맛자락 부여잡고 장난치는 봄바람

혼만 빼고 기약도 없이 달아났어

 

온다는 예고도 약속도 없이

고향 떠난 친구를 기다리는 집담 위에

피고 지는 나팔 꽃잎이어라

나 이제 돌아가도 보자 마자 알아보는

친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