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하나가 화구 전부였던 현대미술 대가, 세잔
폴 세잔(Paul Cezanne)은 1839년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자수성가한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헌신적인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엄한 사람이었으며 대를 이을 아들에게 거는 기대 또한 컸다. 세잔은 아버지의 뜻대로 법률을 공부했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을 잠재울순 없었다. 결국 어머니의 중재로 그림 공부를 허락받고 파리로 떠났다. 하지만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청년 세잔은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년도 못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이듬해 그림에만 전념하겠다 결심하고 다시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해마다 살롱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번번이 낙선하고 만다. 폴 세잔은 그다지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매우 신경질적이었으며 자신의 작품을 찢어버리는 자학적이고 충동적 행동도 했다. 또 사람들과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거처를 숨기는 때도 있었으며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게다가 촌스러운 복장과 거친 매너로 사교계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샀으며 자신을 미워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아 일어난 에피소드를 수없이 남겼다. 그 한 예로, 어릴적 부터 친구인 에밀 졸라가 <작품>이라는 소설에서 세잔을 실패한 작가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절교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세잔은 서른 살이었을 때 열아홉 살의 모델 오르탕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 폴도 태어났지만, 아버지로부터 원조를 계속 받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 이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러나 20년 후 모든 것을 알게된 세잔의 아버지는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였고 아들에게 손자를 버리라고까지 말했다.
<빨간 안락 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
세잔은 화가로서 외로운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없고 아내를 인정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세잔이 마흔여섯 살 때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뺏긴 사실로 오르탕스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그 때 아들 폴의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그리고 반년 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세잔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아직 세잔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한 때였다. 그러나 세잔이 이룬 화업을 평가하는데 그의 사생활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세잔은 초월한 화가였다. 자신의 아내가 어떤 여성이든 세잔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 다른 인생은 없었다. 그림 그림 그림. 세잔은 그리고 또 그리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맑은 날엔 마을 뒷산을 비가 오는 날엔 화실에서 정물을 그렸다.
세잔은 20세기 미술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룰만큼 중요한 해석을 했다. 그는 자연을 원통, 구, 원추로 파악했는데, 그것은 바로 후대의 입체파 회화론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세잔은 동시대의 위대한 화가들뿐 아니라 후대의 위대한 화가들에게 가장 많은 칭송을 받은 몇 안되는 화가이다. 외로운 예술가 세잔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셈이었다. 그는 목숨을 단축할 정도로 그림에 홀린 채로 살아갔다. 세잔의 죽음은 밖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가을비를 맞고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오랜 시간 비를 더 맞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또 이튿날 아침부터 그림을 그리러 나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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