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1745-?) 안견, 장승업과 함께 조선 3대 화가로 불리는 김홍도는 37살 때 ‘단원檀園’이라 호를 짓는다. 단원은 그가 좋아했던 명나라 말기의 유명한 화가 이유방의 호였다. 김홍도는 왕명을 받들어 여러 곳을 여행하며 곳곳의 명승을 화폭에 담았다. ‘총석정도’는 여행할 때 제작한 초본草本과 그때의 인상을 토대로 하여 나중에 제작한 것으로 을묘년화첩에 들어 있는 것. 이 화첩은 그가 50대에 들어서면서 자신감 넘치는 필치를 구사하던 때의 작품으로, 김홍도 화풍의 변천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나라의 녹을 받으며 그림을 그린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기록이 국왕 정조의 개인문집에 남아있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가 있는 자로 그 이름을 안 지 오래이다. 30년 전쯤 나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하게 하였다.’ 여기서 그림에 관한 일이란 국정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화원들에게 풍속화를 그리도록 지시한 일을 말한다.” 조선 중기, 중인 신분으로 태어난 김홍도는 얼굴을 그려도 우리의 얼굴을, 산수山水를 그려도 우리의 산수를 그렸다. 심지어는 노자, 장자도 우리 얼굴로 재탄생됐고, 관세음보살도 우리 어머니가 승화된 모습이다. 단원은 우리 고유 화풍을 그리기 시작한 겸재 정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화원에서 활동한 궁중화가였던 그는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행운아다.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간 단원은 그의 나이 11세때 영조 세손이던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7살 때부터 표암 강세황에게서 화법을 배우기 시작해 진경시대 회화를 갈무리했다는 천재화가. 그런 인연 덕분인지 정조에게 일본의 지도를 그려 바치기도 했고, 정조의 명으로 수원 용주사 ‘삼세여래불탱 화’를 그렸다.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용주사에서 펴낸 ‘부모은중경’의 삽화를 그린 이도 바로 단원이다. 학예에 뛰어났던 정조 자신이 그림을 직접 그릴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재주 많은 단원을 아낄 수밖 에 없었다. 단원은 다른 이들과 달리 산수, 인물, 사군자, 화조 등 모든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도권’ 화가로서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임금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자연 절제된 선과 구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평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은 당대 비슷한 나이의 신윤복의 화풍과 곧잘 비교된다. 권력과 멀리 있던 신윤복은 단원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그림을 그렸다. 한량과 기생의 애정 등을 묘사한 풍속도에서는 ‘모범생’ 단원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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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송천의 자아
글쓴이 : [松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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