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구름따라/ 나의 살던 고향은

[스크랩] 겨울 한라산을 오르다

비 청 2009. 12. 16. 20:23

 

 

12월초 계속되는 비로 인해 한라산 기슭의 눈이 거의 녹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이젠을 챙기면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따뜻한 남쪽 나라 서귀포로 오르는 돈네코 코스엔

전혀 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약간은 실망하는 분위기다.


아무려면 어쩌랴. 오르다 돌아본 서귀포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

오랜만에 만나는 한라산 남벽의 아찔한 절벽, 싱싱하게 살아 건재를

과시하는 구상나무 숲, 오랜만에 만나는 방애오름, 멋있는 서벽,

마지막 서북벽 코스에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의 눈길, 철쭉꽃 만발한

5월 중순에 다시 한 번 올 것을 기약하며 겨울 한라산 등산을 마쳤다. 



 

♧ 한라산 등반 - 김종해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오를 마음이 없었다

함덕이나 성산포, 서귀포나 돌면서

바닷가에 앉아 막소줏잔을 기울이며

초고추장에 물회,

신성한 그녀를 안주로 우러러볼 작정이었다

내 손가방의 계산서류와 소외받은 주문서,

도서목록과 기타 등등에서 떠나기 위해

내 멱살을 쥐고 있는 그것들을 벗어나기 이해

함덕이나 성산포, 서귀포나 돌면서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오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정의 서귀포에서 나는 비틀거렸다

한라산 해발 1,300 고지

안개비와 바람을 벗어 버리고

드디어 그녀는 깨어났다

부드럽고 황홀한 구릉이 보였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과 사물로부터

그것들이 보내는 높이와 절벽으로부터

조난당하고 허우적이는 나는

아아, 그녀를 등반할 엄두를 못 내었다

겁장이가 아니라 무섬장이가 아니라

진실로 내가 오를 까마득한 벼랑은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 한라산漢拏山 1 - 한기팔


나직이 울리는

구름의 말

풀잎의 말

그 아득한 곳의 물소리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은 몸으로

한 世上 귀 기울여 살려했는데


내게 이르는 모든 것

내게서 떠나는 모든 것

먼 地平에

구름 모이면

山의 원근遠近이 뚜렷한데


끝내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山 하나를

마음으로 비운다.

 

 


 

♧ 한라산 고사목 - 이생진

    

산라산

사제비동산 가는 길가에

넋이 나간 고사목枯死木

죽어서도 미래를 사는 고집


살아서 청청했다

죽어서 꼿꼿한 뼈대

마른 주먹엔 무엇을 쥐고 있을까


푸른 생명들 속에서

기죽지 않고 서서

언제 말하려 하는지


살아서 겪은 일 들으려고

노랑나비 흰나비 나와 함께

맴돌고 있는데



 

♧ 한라산 풍경 - 최상고

 

분화구 위로

흩어지는 구름

봉우리로

길 떠나는 바람이 보인다


산을

떠나는 숲과

산을 향해

달려오는 숲이 있다


바다는 하늘위로 출렁거려

한라산 구름은

퍼도에 묻혀 버리고

가물거리는

산 발치의 빌딩

명 채

풍경화로 담긴다


나무들은

산자락에서 수군거리고

숲을 비껴 가는

갈매기

몇 마리

안개 같은 바다로 길을 떠난다



 

♧ 겨울한라산 - 오석만


바람이 시작되는 곳을 아는가?

구름이 넘나들며 백록이 목을 축이던

한라에 서서

멀리 출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해맑은 하늘에 마구 뿌려대는

비취빛 사랑은 누구의 숨결인가?

하늘과 땅사이에 온통 피어있는 하얀 눈꽃들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대와 손을 꼭 잡고

순백의 눈꽃세상에 푸우욱 빠져

차가운 바람도, 힘에 겨운 무게도

하얀 사랑으로 이겨내는 푸른 나무들처럼

다시 태어나

겨울한라산에 매달려있는 고드름이 되어도 좋고

따스한 햇살에 녹아 떨어지는 한방울 물방울이어도 좋다

그대 눈속에서

출렁이는 파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하얀 나비라도 좋고

끝도 없이 부딪치는 파도에서 시작되어

겨울한라산 백록을 넘나드는 구름이라도 좋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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