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문학상 작가 르클레지오의 ‘제주 찬가’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始原)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가 2001년 운주사를 다녀온 뒤 프랑스어로 쓴 ‘운주사, 가을비’에 나오는 대목이다 . 한국 사랑에 빠져 2007년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한 프랑스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문인 르클레지오가 프랑스판 지오(GEO) 3월호 30주년 기념호에 제주여행기를 실었다. ‘제주의 매력에 빠진 르클레지오’란 제목으로 7쪽 분량인 이 글은 그가 한국에 관해 쓴 첫 본격적인 산문이다. 다음은 요약.
“잔인한 냉전 역사 뒤로 삶의 욕구가 가득한 제주는 ‘향수’의 섬
마을 입구마다 서있는 돌하르방 가장 신비
해녀의 힘든 노동 속 ‘희생의 정신’ 감동적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바다. 아마도. 게다가 모든 것을 물들이는 녹청의 색조. 제주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스며 있다. 세계의 끝. 기지(旣知)의 것이 끝나는 쪽의 문, 태평양의 무한함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가장 넓게 뻗은 대륙의 받침 그 사이에 서 있다.
제주 바다에 온 최초의 서양인 헨드릭 하멜이 난파하기 전에 이 섬을 보았을 때 가졌을 느낌을 상상해 본다. 폭풍우에 밀려 번개 사이로 2000m 높이로 솟은 거대한 화산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 그는 지옥의 문 앞에 선 듯한 느낌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네덜란드인이 검은 해변을 지나 싱그러운 숲, 용암의 유황 냄새, 칸나와 야생 선인장의 향기를 발견했을 때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가졌을 것이다.
하멜은 10년 동안 포로가 됐다가 섬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제주에서 맞은 최초의 순간에 대한 향수, 웅장한 화산, 처음 몇날을 보냈던 어부의 집, 대나무 통속에서 끓인 밥맛, 미역국, 새빨간 김치, 몸을 데우는 소주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제주는 온화함과 가혹함, 슬픔과 기쁨의 혼합이다. 검정과 초록의 혼합. 이 섬의 우수는 섬 동쪽 끝 성산일출봉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이 봉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고 선 가파른 검정이다.
성산일출봉을 보고 있노라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화산섬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이 떠오른다. 똑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 4·3사건 때 민병대에 끌려온 성산 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
오늘날 냉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바다에서 멱을 감고 자기 조상의 피를 마신 해변에서 논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성산 마을의 한 여인이 경찰에 남편이 끌려가는 것을 봤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몇 달이 지나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의 삶은 고달팠다.
그러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여인은 받아들였다. 경찰은 그가 처형했던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자기 아이처럼 사랑했다. 이 감동적이면서 잔인한 역사, 슬프면서도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철학이 제주의 영혼이다.
제주의 신비한 형상 중 가장 친근한 것은 돌하르방이다. 돌의 할아버지. 그는 길이 서로 마주치는 곳이나 마을 입구에, 때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높은 모자를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얼굴은 웃음으로 갈라져 있으나 전구 같은 눈은 감히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을 입구에 쌓인 검은 돌탑의 꼭대기에는 날개를 펼친 수리의 형상이 보인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 중부의 푸레페차 인디언의 마을에서도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잡초들 사이에 반원형으로 배치된 당신(堂神) 조각상. 시간의 밤으로부터 솟아올라 바람과 비에 일그러져 가면이 돼 버린 돌 조각에서 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폴 고갱 무덤 앞에 있는 오비리(Oviri) 조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집의 거대한 나무들은 오방색 리본을 한 채 거인의 팔처럼 낮은 가지를 벌리고 있다. 나무 위 리본은 태양빛에 바랬고 거미줄이 쳐져 있다.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세계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열망을, 모든 추상을 배격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숭배의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한다.
제주는 감정의 섬이다. 한국어는 감정적 뉘앙스가 많은 언어다. ‘정(情)’이나 ‘한(恨)’은 번역이 불가능하다. 효성, 혈연, 원한? 한국 영화는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제주에는 보람이란 감정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긍지가 섞인 것이다. 이런 감정이 해녀에게 있다. 어릴 적 태평양 섬에서 조개나 진주를 캐기 위해 반쯤 벗은 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여성에 관한 에로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산문적이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나이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다. 그들의 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
○ 르클레지오
△1940년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대 초 니스 문학전문학교 학사 △1963년 소설 ‘조서’로 등단 △1966년 태국 방콕에서 군 복무 및 이후 멕시코와 파나마에서 원주민과 함께 수년간 생활 △1980년 프랑스 최고 학술기관인 아카데미프랑세즈의 문학대상 수상 △1994년 리르 지 선정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2007년 이화여대 초빙교수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사막(1980년), 황금물고기(1997년), 혁명(2003년)
■ 리옹3대학 이진명 교수가 본 ‘르클레지오의 제주찬가’
“그의 글, 한국사람 백마디 보다 설득력 클것”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가 한국에 관한 본격적인 산문을 프랑스어로 써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운주사, 가을비’ 등 시 몇 편과 2007년 ‘발라시네(Ballaciner)’란 책에 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 3명과의 인터뷰를 부록으로 담은 바 있지만 한국을 소재로 한 본격적인 산문을 발표한 적은 없었다.
프랑스 리옹3대학의 이진명 한국학 교수(사진)는 “르클레지오의 이 글,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대해 쓸지도 모르는 글들은 프랑스어권에 한국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한국 사람이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백배나 강한 설득력을 지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의 저명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은 1901년 6월 서울을 방문한 피에르 로티의 20쪽짜리 ‘서울에서’란 글 이후 처음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글이 발표된 잡지 지오는 영미권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비슷한 고급 잡지로 세계적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이 유럽을 중심으로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영어판 등을 발행하고 있다. 사진물을 위주로 한 여행기를 주로 게재한다.
이 잡지는 글의 서문에서 “유목민 작가 르클레지오는 몇 차례 체류한 한국을 유달리 좋아한다”며 “한국의 가장 남쪽에 있는 제주란 섬에서 그는 우수(m´elancolie)에 사로잡혔다”고 소개했다.
특히 이번 ‘제주도 여행기’는 ‘제주찬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주도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다.
르클레지오는 이 글에서 하멜의 표류에 대한 상상부터 제주를 대표하는 성산일출봉, 돌하르방, 샤머니즘, 해녀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느낌을 담았다. 그는 특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유목민 작가’답게 성산일출봉에서 인도양의 모른 봉을, 당신(堂神) 조각상에서 마르키즈 제도 폴 고갱 무덤 앞의 오비리 조각상을, 돌탑 꼭대기의 수리 형상에서 멕시코 중부 푸레페차 원주민 마을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걷고 먹고 말하고 자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것에 대해 쓸 뿐이다”라고 말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 동아일보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
(1940년 4월 13일 ~ )
그는 30여권의 작품을 썼으며, 1963년 르노도상과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국적으로는 2000년 가오싱젠 이후, 언어로는 1985년 클로드 시몽 이후 첫 번째 프랑스 국적과 프랑스어 작가로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스웨덴 학술원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르 클레지오는 새로운 시작과 시적인 모험 및 감각적인 황홀경을 표현하는 작가로 지배하는 문명 안팎을 넘어 인류애를 탐험하였다"라고 평했다.
인물
1940년 니스의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의 선조는 18세기 브르타뉴에서 일 드 프랑스(현재 모리셔스)로 이주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르 클레지오와 어머니는 니스에, 그의 아버지는 영국군 외과 의사로 나이지리아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1958년부터 1959년까지 영국의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그는 니스의 문학전문학교 (Institut d’etudes Litteraires)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교사로 일하였다. 1964년에는 액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멕시코 초기 역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열렬한 여행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7살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뒤 23살에 쓴 첫 번째 소설인 《조서(Le Procès-Verbal)》는 공쿠르 상에 후보로 올랐으며, 이 작품으로 1963년에 르노도 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대한민국도 자주 방문하였으며,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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